| 퇴직 마지막날 모습 |
EP.40 - Goodbye, my casino!
인생에서 30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1992년 1월, 저는 카지노에 입사했어요.
그로부터 딱 30년이 지난 2022년 1월.
저는 카지노에서 퇴사를 했어요.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저는 매일 카지노 테이블로 출근했어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 바닥의 베테랑이 되었다고 자부했고
저의 은퇴식 역시 화려한 조명 아래서
전직원들의 축복을 받으며 맞이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도박도 그렇듯이
인생은 늘 저에게 예상치 못한 패를 던졌어요.
코로나가 모든 걸 바꿨어요
2020년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는
제가 사랑했던 일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어요.
전 세계 항공편이 끊겼어요.
그 때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VIP와 일반 관광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기며 직격탄을 맞았어요.
마스크와 투명 아크릴 가림막 너머로
서로를 경계하며 게임을 진행하던 그 답답했던 나날들.
'금방 지나가겠지' 라고 서로를 위로했던 지루한 휴직의 시간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카지노 딜러가 포커 페이스를 마스크 페이스로 바꾸는
그런 웃지 못할 상황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 당시에는 비트코인이 대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직원들 중에 비트코인으로 큰 돈을 벌어서
집을 사고 차를 외제차로 바꾸는 등
코로나의 위기를 기회로 잡은 직원들도 있었어요.
위기에는 항상 기회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희망퇴직
2022년 초는 하루 확진자가 수십만 명씩 쏟아지던
오미크론 대유행 시기였어요.
마침내 방역 피로감이 극에 달했고
카지노 업계의 누적 적자는 수천억 원에 달해서
본사에서는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압박이 본격화됐어요.
그래서 회사는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시행했어요.
희망퇴직 명단에는 제가 선두에 있었어요.
저와 같이 입사해서 동고동락을 같이 한 동기들은
50명이 입사해서 30년이 지난 그때에 5명이 남았었는데
정확히 10%만 남은 셈이었어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2년 동안 직원들은 번갈아 가면서
격달ㄹ 휴직계를 쓰고 쉬었으며 다들 지쳐있었어요.
마지막 날
2022년 1월.
저는 마침내 평생을 몸담았던 정든 일터에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서글픈 마침표를 찍었어요.
희망퇴직 서류에 서명을 하던 날의 분위기는
유독 쓸쓸하고 묘하게 느껴졌어요.
제가 쓰던 여자간부휴게실의 락카를 비울 때가 생각나네요.
락카 안에는 사원증, 명찰, 유니폼, 유니화(근무용 구두).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빛 바랜 사진 몇 장이 전부였어요.
야간근무를 신청하지 않았어요
희망퇴직 당사자들은 퇴사하기 전에 야간근무를 신청했어요.
퇴사하기 3개월 전에 야간근무를 하면 평균임금이 올라가서
퇴직금이 천만원 넘게 차이가 난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저는 야간근무를 신청하지 않았어요.
카지노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밤에 별을 보며 보내기 싫었고
직원들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회사도 어려운데 저까지 야간근무를 하며 동참하기 싫었어요.
마지막 선물
후배가 저에게 꽃바구니를 선물했어요.
"선배님! 30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카지노 주방에서는 주방장이 직접 만든 생크림케익을
생딸기로 장식하고 Bye라고 레터링되어 스낵바로 올라왔고
미술을 전공한 여직원은 유니폼 입은 저의 모습을
예쁘게 그려서 선물했어요.
그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여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그렇다고 슬픈 감정은 아니였어요.
지난 30년 세월을 꿋꿋하게 버티며 카지노와 함께한
저 자신에 대한 '대견함' 같은
감정이었어요.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지난 30년이 빛처럼 지나갔습니다.
그날의 소리들
화려한 조명과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카지노.
칩스 부딪히는 소리.
'스르륵' 하는 카드셔플 소리.
딜러의 "베스 다운 플리즈(Bets
down please)"
"노 모어 벳(No more bet)" 의 우렁찬 콜링소리.
슬롯머신의 기계작동음들.
거기다가 손 소독제 짜는 소리.
마스크 너머의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딜러의 한숨 소리.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적인 재난 앞에서의 무력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두려움과 기대감.
저는 이 모든 것들이 머리속을 스쳐서
쏜살같이 지나갔어요.
Goodbye, my casino!
30년 동안 매일같이 출근하던 직원출입구의 그 미로 같았던 길을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만감이 교차했어요.
정든 칩스와 테이블 냄새, 차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 카펫의 푹신함.
그리고 30년을 함께한 카지노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저는 카지노를 조용히 걸으며 쓸쓸히 떠났어요.
Goodbye, my casino!
다음 에피소드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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