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 백발의 노신사가 카지노에서 28억을 잃은 날
노신사가 나타나다
카지노에서 30년을 일하면서
잊히지 않는 고객들이 있어요.
그 중 한 명이 일본에서 온 노신사였어요.
80대 중반이었는데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깔끔한 분이었어요.
백발이 인상적이었고 정장 대신
고가의 니트에 조끼를 걸치고
세미캐주얼 바지에 로퍼를 신은 차림이었어요.
돈 많은 사람 특유의 여유가 느껴지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분이 제가 담당한 테이블에 앉았어요.
캐리어 안의 엔화
그날 노신사 옆에는 비서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어요.
일본에서는 이런 수행비서를 가방모찌(鞄持ち)라고 해요.
말 그대로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가방모찌가 끌고 온 캐리어 안에는
엔화가 가득 들어있었어요.
그걸 꺼내서 테이블에 내려놓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말이 필요 없었어요.
이분은 오늘 진심이구나.
그게 느껴졌어요.
8시간, 28억
그날 저는 플로어펄슨이었어요.
제 근무시간은 8시간.
그 8시간 동안 그 노신사는 자리를 뜨지 않았어요.
게임이 진행되면서 가져온 현찰이 바닥났어요.
노신사가 가방모찌에게 말했고.
가방모찌는 금액이 적힌 보관증을 가져왔어요.
게임은 멈추지 않았어요.
게임이 끝났을 때 그분이 잃은 금액은 28억이었어요.
단일 근무 시간 중 고객이 잃은 최고 금액으로
기록될 정도였다고 나중에 들었어요.
그날 저는 테이블을 비울 수가 없었어요.
8시간 동안 화장실 4번, 생수 4통이 전부였어요.
인센티브도 없었어요.
평생 처음으로 이기고 싶은 욕구
게임이 끝나고 그 노신사가 저에게 말했어요.
80년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이겨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상대가 없었다고.
그런데 제 테이블에 앉는 순간
처음으로 그 이겨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고.
28억을 잃으면서도 그 말을 했어요.
돈보다 그 욕구가 더 소중했던 걸까요?
80년 넘게 살아온 노신사가 카지노 테이블에서
처음으로 간절히 원한 것이 있었다는 게.
저는 지금도 그 말이 마음에 남아요.
그분은 그 후로도 저를 이기려고 계속 오셨어요.
저의 끗발도 계속 가지는 못하잖아요.
테이블이 루징되면 담당 플로어펄슨이 체인지 되거든요.
끗발 있는 자들을 찾는 게임
고객, 딜러, 플로어펄슨
중에 어느 누구도 끗발을 오래도록 계속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카지노의 변하지 않는 불문율이예요.
지금 끗발이 있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끗발이 없다고 실망할 것도 없어요.
카지노의 끗발은 돌고 돌아요.
끗발이 오는 때를 기다리는 방법 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게임테이블이 루징되면, 담당 플로어펄슨은 바로 체인지되는데
플로어펄슨이 체인지되면 딜러들도 함께 체인지가 되거든요.
그 누구도 그 날 끗발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핏보스는 딜러와 플로어펄슨을 체인지하면서
끗발있는 자들을 찾아내려고 8시간동안 안간힘을 다 쓰는데
다행히 게임초기부터 찾아내면 좋겠지만
못 찾고 퇴근할 때도 있어요.
핏보스가 끗발 있는 자들을 찾는 게임은
지금도 여전히 카지노에서는 계속되고 있을 거예요.
다음 에피소드 예고
1억씩 베팅하는 고객이 식음료팀 주방장을 호출했어요.
그 이유가 황당했어요.
다음 에피소드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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