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업장에서 고사 지내는 모습 |
EP.11 - 카지노의 끗발과 미신, 그리고 돼지머리
카지노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요.
사람은 간절할수록 무언가에 기댄다는 것을.
끗발이 나면...
딜러든 플로어펄슨이든 핏보스이든
자기 테이블이 win을 하면
소위 끗발이 나면
그다음 날 출근할 때부터 달라져요.
어제와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끗발이 나면 속옷도 그대로.
겉옷도 그대로 입고 출근했어요.
귀걸이도 반지도 어제 했던 것과 똑같은 걸 했고요.
넥타이도 당연히 같은 걸 맸어요.
씻지 말아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저마다 다른 미신
사람마다 미신이 다 달랐어요.
어떤 직원은 게임테이블 밑에 부적을 붙여 놨어요.
어떤 직원은 출근길에 반드시
같은 편의점에 들러 같은 음료를 샀고요.
고객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새끼손톱만 유독 길게 기른 중국 고객이 있었어요.
카드 모서리를 천천히 들어 올리는 것을 '스퀴즈' 라고 해요.
그 중국 고객은 긴 새끼 손톱으로 스퀴즈를 하면
좋은 패가 나온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카드를 받을 때마다 그 손톱으로 카드 모서리를 쪼아서
천천히 들어올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국 고객이 긴 새끼 손톱으로
카드를 스퀴즈만 하면 이겼어요.
일본 고객 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한 미신을 믿는 사람도 있었어요.
게임 전에 호텔룸에서 여자를 불러야
끗발이 난다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황당하고 고루하며
요즘 같은 세상에 맞지 않는 미신처럼 보이지만
그 고객들은 다 진지하게 그런 행동들을 했어요.
카지노도 미신을 믿었다
그런데 미신은 직원들만의 얘기가 아니었어요.
카지노 자체가 미신을 믿었거든요.
지금은 없어진 문화지만.
제가 일하던 시절에는 카지노에서 고사를 지냈어요.
돼지머리에 각종 과일, 고사떡, 막걸리까지 차려놓고
아주 제대로 지냈는데, 특히 통바베큐는 그 맛이 일품이었어요.
6개월 미만의 어린 돼지를 통째로 돌려가며 구운 것인데
껍질은 쫄깃거리고, 속살은 너무 부드러워서 입에서 살살 녹았어요.
고사에는 전 영업부 간부와 딜러들이 다 참석해야 했어요.
총지배인도 예외가 될 수 없었으며, 다 같이 영업장에 모여
직급별 순서대로 고사를 지내며 돼지머리에 절을 했어요.
케셔에서 미리 준비한 신권을 받아 봉투에 넣어서 나눠주면
각자 절을 하기 전에 돼지 입에 봉투를 꽂는 것도
고사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순서였어요.
그 당시에는 카지노 계열사가 다 고사를 지냈어요.
고사가 끝나면...
고사는 보통 오전 10시쯤 지냈는데 고사가 다 끝나면
통돼지 바베큐에 막걸리를 아침부터 나눠 마시고
남은 음식은 휴게실로 올려 보내서 나눠 먹게 했어요.
그날 만큼은 예외적으로 전 직원이 근무중 임에도 불구하고
오전부터 막걸리의 음복이 허용이 되었어요.
고사의 효능이 있으려면 음복을 해야 해서
직원들은 다 같이 먹고 마셨거든요.
그런데 고사를 지내고 나면 희안하게도 그날부터 시작해서
바닥을 치던 하우스의 승률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우스의 승률이 떨어지고
저조해는 기간이 꽤 길어지게되면
회사는 길일을 잡아서 고사를 지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조하던 승률이 반등하는 것은
고사를 지내서가 아니라 올라갈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고사를 지내는 타이밍은 참 절묘했어요.
마치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고 나면
반드시 비가 오는 것과 비슷해요.
알고 보면 그것도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인데도 말이예요.
이렇게 카지노의 이런 고사를 지내는 문화는
요즘 카지노 직원들은 상상도 못 할 얘기겠지만
그때는 그게 다 진심이었어요.
또한 고사는 간절함이 만들어낸 문화이기도 했어요.
카지노는 확률의 세계와 같아요.
수학적으로 계산된 하우스 엣지가 지배하는 곳이었지만
그런데 그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게임하는 고객들도
결국은 모두 인간이기에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부적이든, 속옷이든, 돼지머리든
무엇이든지 간에
또 다른 애사심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에피소드 예고
카지노에는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어요.
그게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었거든요.
다음 에피소드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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