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를 모래 주는 중국동포
EP.18 — 가슴에 순대를 품고 카지노에 온 사람
코로나19가 2020년부터 심각해졌어요.
그래서 카지노 고객의 90%가 사라졌어요.
외국 고객 입국이 금지되면서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들만 들어올 수 있었거든요.
회사가 무척 힘든 시기였어요.
저는 그때 식음료 파트.
일명 스낵바의 책임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고 있었어요.
첫인상
제가 그 고객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말하면 인상이 참 안 좋았어요.
깡패 두목이나 산적같이 생긴 외모에 빡빡머리.
연변 말투에 화려한 티셔츠를 입고
매일 카지노에 출근하다시피 했어요.
중국동포 고객이었어요.
처음엔 그냥 인상이 안 좋은 고객이구나 싶었어요.
가슴에 품고 온 순대
근데 이상한 게 있었어요.
그 고객이 스낵바 여직원들한테 유독 잘해주는 거예요.
어느 날은 카지노는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되는데도.
가슴에 순대를 품고 와서 여직원들한테 주는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
'아... 이 사람 마음이 참 따뜻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몰래간 양꼬치 회식
그 뒤로 저하고도 가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어요.
중국에 어머니와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고 했어요.
본인이 직접 양꼬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한번 놀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스낵바 직원들이랑 몰래 그 양꼬치 가게에서
직원회식을 했어요.
지금도 마케팅 직원을 제외하고는
카지노 직원들은 고객들과 업장 밖에서 사적인 일로
따로 만나는 걸 금지하거든요.
회식을 한 이후부터 그 중국 동포는 저를 '누나'라고
부르면서 더 잘 따랐어요.
줄자로 잰 머리둘레
어느 겨울.
바람이 많이 불고 날씨가 추운 날이었어요.
그 고객이 얼굴 전체와 머리까지 발갛게 된 채로
스낵바에 들어 왔어요.
모자라도 쓰고 다니라고 말했더니
머리가 너무 커서 맞는 모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그럼 내가 모자하나 떠줄게요."
그리고 바로 줄자를 꺼내서 머리둘레를 쟀어요.
직원들은 줄자로 머리둘레를 재는 모습이 웃겼던지
다 같이 웃으며 즐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하루 만에 중국인이 쓰는 스타일의 모자를 떠서
예쁜 선물 상자에 넣어 그 중국동포에게 주었어요.
줄자로 재서 그런지 딱 맞았어요.
그러자 그 덩치 큰 사람이.
눈에 눈물이 촉촉하게 고여서는 말했어요.
"누나, 고마워요. 덕분에 올겨울엔 따뜻하겠네요"
나중에 저한테 따로 얘기한 건데 그 모자를 선물받고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하더라구요.
과일과 식사대접
한번은 중국동포의 어머니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스낵바에 같이 와서 인사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VIP 고객한테만 제공하는
고급과일과 식사를 내드렸어요.
그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전부였거든요.
퇴사하고 몇 년 전에 양꼬치 가게를 찾아갔더니
양꼬치 가게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지금도 조폭처럼 생기고 빡빡머리를 한 사람을 보면
그 중국동포가 가끔 생각나요.
깡패같이 생겼는데 가슴에 순대를 품고 왔던 그 사람.
겉모습만 보면 무섭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음 에피소드 예고
임원이 저를 임원실로 불렀어요.
사과를 깎아주면서 슬쩍 건네는 패키지가방.
저는 웃으면서 받았어요.
다음 에피소드에 계속됩니다.